p298~299

 

 내가 어렸을 때, 구스타브 도레의 부식 동판화들을 삽입하여 아동용으로 다시 쓴 구약성서를 펴보았을 때 나는 사랑스런 하나님이 구름 위에 앉아 있는 그림을 보았다. 하나님은 나이 든 남자로서, 두 눈과 코와 긴 수염이 있었다. 그때 나는 자신에게 말했다. 하나님에게 입이 있다면 하나님도 먹어야만 하지. 그리고 하나님이 먹는다면 하나님에게도 내장이 있을 것임이 틀림없다고.
 하지만 이 생각은 나를 몹시 놀라게끔 했다. 왜냐하면 나는 비록 내가 믿음이 없는 가문에서 출생했지만 하나님의 내장에 대한 생각이 하나님에 대한 모독임을 느꼈기 때문이다.
 전혀 신학적인 예비교육도 없이 나는 벌써 아이 때 아주 즉흥적으로 똥과 하나님이 합치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. 그리고 그 결과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만들어졌다고 보는 기독교 인류학의 기본논제가 지닌 문제성까지도 나는 그때 이미 깨달았다.
 둘 중의 하나다. 인간이 하나님과 똑같은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면 하나님에게도 내장이 있거나, 아니면 하나님에게 내장이 없다면 인간은 하나님과 동일하지 않다.
 옛날 그노시스파의 사람들은 내가 다섯 살 나이로 그랬던 것과 똑같이 그 사실을 명확히 직시했다. 까다로운 이 문제를 최종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기원 2세기 그노시스파의 대가였던 발렌틴은 주장했다. <예수께서는 먹고 마셨지만 변을 보지 않았다.>
 똥은 악보다도 더 다루기 힘든 신학적 문제다.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를 주었다. 그래서 하나님은 인류의 범죄에 대해 책임이 없다고 우리는 생각할 수 있다. 그러나 똥에 대한 책임은 오로지 인간을 창조한 분이 진다.

 

Posted by .스트라이크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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