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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렇다, 나는 내가 과연 단 한번이라도 사랑이란 걸 할 수 있을지 때때로 의심을 품곤 했었다. 나는 마음 속에 떠오른 생각들을 하나하나 검토하여 그것을 몇 개의 구성성분으로 분석하는 습관이 붙어버렸다. 그런 결과 나는 사랑에 대해 일부분은 에고이즘이고, 일부분은 소유욕이고, 나머지 부분은 생활의 안정을 얻고싶다는 욕구라 보고 있다. 그리고 이제까지 문제삼아 온 섹스의 환상을 파괴해 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품고있다.
성의 환상이 사라진다면 인간은 좀 더 신에 가까이 갈 수 있는 희망이 있는 걸까? 내게는 세상이 너무 성의 환상으로 충만되어 있다고 보인다.
캐닝엄은 좋은 사람이고, 지적이며, 생명력이 흘러 넘친다. 그럼에도 불구하고, 마술이나 악 등에 대해 운운하는 그의 이야기는 그것 없이는 지탱되지 못하는 환상이다. 악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. 우둔함이 있을 뿐이다. 마술 따위도 존재하지 않는다. 따라서 마술이 효과를 발휘하는 일 따위도 있을 수 없다. 이런 이유로 우리들은 매력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우주에 내팽개쳐져 있다. 오락산업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로맨틱한 사랑 또한 거짓이다. 이 로맨틱한 사랑이라는 관념을 토대로 해서 그 위에 윤리법전이 수세기 동안에 걸쳐 구축되어 왔다. 말 잔등에 올라탄 기사가 귀부인의 장갑 한짝을 찾기 위해 용이나 거인을 무찌른다는 로맨스는 사실 은폐하기 위한 거짓말에 지나지 않는다. 뒷골목에서 교미하는 두 마리의 개라는 진실을 감추기 위한 거짓말.